셀프로 에어컨 청소를 해보려다 결국 사람을 불러버렸다

여름 초입에 송풍구 안쪽 검은 얼룩을 발견했을 때의 찝찝함

날씨가 갑자기 더워지기 시작한 게 5월 말이었던 것 같다. 방 안이 유독 꿉꿉하고 끈적거려서 더는 버티지 못하고 에어컨을 켜야겠다고 다짐했다. 벽에 걸려있는 리모컨을 찾아 전원을 눌렀는데, 삐빅 소리와 함께 바람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람이 불어오자마자 코끝을 찌르는 쿰쿰한 냄새가 났다. 단순히 오랫동안 안 써서 먼지가 쌓여 나는 냄새가 아니었다.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어서 에어컨 아래로 의자를 끌고 가 올라섰다. 바람이 나오는 길쭉한 송풍구 깃을 손가락으로 살짝 아래로 젖히고 핸드폰 손전등을 비춰보았다. 안쪽에 보이는 것은 까만색 작은 점들이 다닥다닥 군집을 이루고 있는 곰팡이 무리였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작년 여름이 끝나고 나름대로 필터는 물로 깨끗이 씻어서 바짝 말려둔 상태로 닫아두었는데, 내부 송풍 팬까지 곰팡이가 번져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원룸인데, 이 집에 옵션으로 달려있던 가전이라 이전 세입자들이 어떻게 썼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사 온 지 2년째가 되어가는 동안 겉만 대충 닦고 썼던 내 무지함이 원망스러웠다. 이 상태로는 도저히 1분도 켜둘 수 없을 것 같아 즉시 전원을 끄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방 안의 열기보다 더 답답한 기분이 온몸을 감쌌다.

다이소 에어컨 세정제로 버텨보려다 포기한 이유

당장 사람을 부르기에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에어컨 세정제 스프레이를 사용해서 혼자서도 충분히 청소할 수 있다는 후기들이 수두룩했다.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어 동네 다이소로 달려가 에어컨 세정용 스프레이 두 캔을 샀다. 가격도 몇 천 원밖에 안 하니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었다. 돌아와서 필터를 조심스럽게 빼내고, 그 뒤에 드러난 알루미늄 냉각핀에 스프레이를 골고루 분사했다. 설명서에는 뿌려두면 알아서 씻겨 내려간다고 되어 있어서 듬뿍 뿌렸는데, 아뿔싸 싶었다. 벽걸이 에어컨 구조상 그 아래쪽으로 물이 새어 나와 벽지를 적시기 시작한 것이다. 원룸이라 벽지가 상하면 퇴거할 때 도배비를 물어내야 할 수도 있다는 걱정에 덜컥 겁이 났다. 급하게 신문지와 걸레를 가져와서 틈새를 막고 벽에 흘러내린 용액을 닦아냈다. 설상가상으로 방 안에는 세정제 특유의 인공적인 향과 기존의 곰팡이 냄새가 뒤섞여 머리가 아플 정도로 독한 냄새가 진동했다. 게다가 가장 심각한 송풍구 안쪽 팬의 검은 곰팡이는 이 스프레이를 아무리 뿌려도 전혀 제거되지 않았다. 면봉에 소독용 에탄올을 묻혀서 비좁은 날개 사이를 하나씩 문질러 보았지만, 먼지만 뭉칠 뿐 안쪽 깊은 곳은 손이 닿지도 않았다. 괜히 플라스틱 날개를 세게 건드렸다가 툭 부러질 것 같아서 결국 셀프 청소는 중간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돈 아끼려다 일만 키운 꼴이었다.

서울 관악구 원룸 벽걸이 에어컨 청소 업체를 고르는 과정

결국 내 손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전문 업체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요즘 많이들 쓴다는 미소와 숨고 같은 생활 서비스 매칭 앱을 스마트폰에 설치했다. 대략적인 벽걸이에어컨청소비용을 알아보니 보통 7만 원에서 9만 원 선에서 형성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지출이 크긴 했지만 건강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고 위안 삼았다. 견적을 요청하자마자 여러 기사님들의 프로필과 금액이 도착했다. 평점이 좋은 기사님을 선택해 바로 예약을 잡으려 했으나, 진짜 문제는 예약 대기 기간이었다. 날씨가 부쩍 더워진 탓에 이미 예약이 꽉 차 있어서 가장 빠른 날짜가 열흘 뒤라는 답변을 받았다. 에어컨 없이 이 무더위를 열흘 동안 버텨야 한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다른 대형 제조사 공식 서비스 센터에 전화를 걸어봤더니 거기는 대기 시간이 무려 3주나 걸린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숨고에서 매칭된 기사님께 예약금 일부를 송금하고 10일 뒤로 일정을 확정했다. 기다리는 동안은 그냥 선풍기 한 대에 의존해 땀을 흘리며 버텼다. 매일 밤마다 예약 취소 건이 생기지 않을까 앱을 들여다보는 미련한 짓을 반복했다.

에어컨 분리 청소 작업 과정과 방 안의 좁은 공간에서 발생한 소동

마침내 예약한 날이 되었고, 약속한 시간에 맞춰 에어컨청소기사님이 무거운 장비 가방을 메고 원룸 문을 두드렸다. 우리 집은 전형적인 좁은 원룸이라 침대 매트리스 바로 위에 에어컨이 위치해 있었다. 작업 공간이 너무 좁아서 기사님이 들어오시기 전에 침대 패드와 이불을 전부 걷어내고 매트리스를 벽쪽으로 비스듬히 세워두어야 했다. 기사님은 좁은 공간에서도 익숙한 듯 에어컨 주변 벽면에 투명한 비닐 가림막을 꼼꼼하게 테이프로 붙이기 시작하셨다. 물이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깔때기 모양의 비닐 포장 같은 것이었다. 이어서 에어컨 전면 플라스틱 커버를 조심스럽게 분리해 내셨는데, 겉껍데기가 뜯겨 나가자 드러난 내부 상태는 내가 혼자 볼 때보다 훨씬 심각했다. 시커먼 곰팡이가 송풍 팬 전체를 덮고 있었다. 기사님은 물통에 약품을 섞더니 고압 세척기 노즐을 대고 에어컨 내부에 강한 물줄기를 쏘기 시작하셨다. 좁은 방 안에 슈우우욱 하는 날카로운 기계 소음이 울려 퍼졌고, 비닐 호스를 타고 내려온 물은 순식간에 간장처럼 새까만 구정물이 되어 양동이에 차올랐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진작 부르지 않고 혼자 끙끙 앓았던 시간들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청소 후 깨끗해진 에어컨과 여전히 남아있는 묘한 냄새의 원인

물 세척이 끝나고 분해했던 플라스틱 부품들을 기사님이 욕실로 가져가 깨끗하게 씻어오셨다. 다시 조립을 완료한 뒤, 송풍 모드로 최소 2시간 동안 작동시켜 내부 물기를 완전히 말려야 한다고 일러주셨다. 기사님이 수고하셨다는 인사와 함께 철수하신 후, 방 안을 대충 정리하고 에어컨 바람 아래 누웠다. 눈으로 보기에는 바람 날개 안쪽이 새것처럼 반짝거리고 검은 먼지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8만 원이 넘는 비용이 들어갔지만 눈앞의 더러움이 사라지니 속이 다 시원했다. 하지만 서너 시간이 지난 뒤에도 방 안에서 묘하게 시큼하면서도 비릿한 냄새가 얇게 맴돌았다. 예전의 썩은 곰팡이 냄새는 분명히 아닌데, 청소할 때 쓴 화학 약품의 잔향인지 아니면 내 기분 탓인지 분간이 잘 가지 않았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에어컨 내부 열교환기 틈새에 찌든 냄새는 한 번의 청소로 완벽히 빠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결국 눈에 보이는 먼지는 다 털어냈지만, 바람을 쐴 때마다 코끝을 스치는 이 묘한 시큼함 때문에 완전한 해방감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 내년 여름에도 또 이 소동을 겪어야 할지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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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1. 곰팡이 때문에 벽지까지 젖었다니, 정말 끔찍하네요! 필터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분리 세척 후 완전히 말리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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