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걸이 에어컨 뜯다가 배수 호스 건드린 날
호기롭게 시작한 에어컨 셀프 청소
날씨가 갑자기 더워지길래 마음이 급해졌다. 작년 여름에 쓰다가 그냥 덮어뒀던 벽걸이 에어컨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괜히 사람 부르면 예약 잡기도 힘들고 비용도 10만 원 안팎으로 깨지니까, 유튜브를 보면서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터 정도야 늘 씻어 썼으니 이번에도 그 정도겠거니 했다. 그런데 겉 뚜껑을 열자마자 곰팡이 냄새가 확 풍겨왔다. 이건 필터 문제로 끝날 게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
엉겁결에 시작된 완전 분해
송풍팬 안쪽에 검은 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게 보였다. 닦아보려고 물티슈를 밀어 넣었지만 손이 닿질 않았다. 결국 드라이버를 꺼내 들었다. 나사를 몇 개 풀었더니 껍데기가 툭 하고 떨어졌다. 여기까지는 순조로웠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냉각판이 보였는데, 그 아래쪽 배수판을 청소하려고 살짝 힘을 줬더니 뭔가 ‘뚝’ 하는 불길한 소리가 났다. 에어컨 본체 뒤쪽으로 연결된 배수 호스가 꺾이면서 고정되어 있던 부분이 탈락한 것 같았다.
시작된 에어컨 누수의 공포
겁이 덜컥 났다. 일단 다시 조립해서 켜봤는데, 시원한 바람은 나오는데 이상하게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알고 보니 배수 호스 연결 부위가 살짝 틈이 벌어지면서 물이 안으로 새고 있었던 거다. 수건을 급하게 받쳐두고 한참을 멍하니 바라봤다. 원래는 쾌적하게 에어컨을 틀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물이 어디로 새는지 확인하느라 바닥에 엎드려 있는 꼴이 됐다. 옥상 방수 공사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집 안에서 물이 새니까 당황스러움이 배가 됐다. 전문 업체 부르면 냉매 보충까지 해서 보통 10~15만 원 정도 부르던데, 내가 괜한 짓을 해서 돈을 더 쓰게 생겼다.
어설픈 수리와 찜찜한 마무리
어떻게든 고쳐보려고 방수 테이프를 사다가 감아봤는데, 이게 압력이 걸리면 물이 새는 건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한 30분 정도 에어컨을 가동해 보고 물이 맺히는지 계속 지켜봤다. 사실 완벽하게 잡혔다는 확신은 없다. 수평이 안 맞아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아까 꺾인 호스 내부가 찢어진 건지 판단이 안 섰다. 여름 내내 에어컨 아래에 대야를 놔둬야 하는 건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화장실 수전 하나 고칠 때도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가전제품은 건드리는 게 아니라는 말이 왜 있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끝내 해결되지 않은 불안함
결국 청소는 반쯤 하다 말았다. 곰팡이는 좀 줄어들었을지 몰라도, 마음 한구석에 물이 새면 어쩌지 하는 불안함이 가시질 않는다. 오늘 밤에 잘 때 에어컨을 켜놓고 자도 되는 건지, 아니면 내일이라도 업체에 연락해서 상태 점검을 받아야 하는 건지 결정하지 못했다. 괜히 돈 아끼려다가 더 큰 수리비가 나올까 봐 겁이 난다. 에어컨 청소를 결심했던 어제의 내가 참 원망스럽다. 아마도 다음 주 중에는 결국 서비스를 부르게 될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냥 참고 쓰다가 에러 코드 뜨면 그때 부를지도 모르겠다.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다.
